깊게 들어가기 전에 하나 말씀드리면, Notes로 쓰는 첫 글입니다. 이 분류에는 그때그때 읽은 것과 그에 대한 생각을 적을 예정입니다. 팀 전체가 합의한 입장이라기보다 쓴 사람 개인의 의견에 가까울 겁니다. 그 점을 감안하고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서평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부터 정리해 보죠. 핵심은 AI가 혁신적인 도구로 남지 않고 기반 시설이 된다는 겁니다. 전기와 인터넷이 그랬던 것처럼요. 처음에는 놀랍고, 그다음에는 편리하고, 결국에는 너무 당연해져서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않게 되죠. 문서 작성부터 진단, 금융 분석, 교육까지 스며들어서 눈에 안 보이는 자리에서 돌아가게 된다고 봅니다.

그럼 사람한테는 뭐가 남느냐. 서평이 내놓는 답은 두 갈래인데요, 하나는 판단입니다. AI가 그럴듯한 답을 아무리 빠르게 만들어 줘도 그게 옳은지 정하는 건 여전히 사람 몫이라는 거죠. 그래서 전문가의 자리는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커진다고 봅니다. 다른 하나는 기계가 흉내 내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독창성이라든가, 사람을 직접 만나서 쌓는 신뢰 같은 것 말이죠.

크게 보면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다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조금씩 다르게 보는 데가 있어서, 세 가지만 짚어 보려고 합니다.

전기랑 인터넷은 층위가 다르죠

첫 번째는 비유 그 자체입니다. 뭘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꼬투리를 잡느냐 싶으실 수도 있는데요, 이게 뒤에서 할 이야기와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짚고 갑니다.

전기와 인터넷은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죠. 전기는 이미 생활의 근간까지 내려가 버렸습니다. 조명이나 냉난방은 말할 것도 없고, 물이 집까지 올라오는 것도 음식이 상하지 않는 것도 전기가 받치고 있으니까요. 전기가 나가면 일이 느려지는 게 아니라 생활이 멈춥니다.

인터넷은 아직 거기까지는 아닙니다.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 꽤 많이 남아 있죠. 진짜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 없이도 일할 수 있습니다. 많이 느려지고 어딘가 허전할 뿐이지, 못 하는 건 아니에요.

AI가 딱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없으면 느려지고 허전한데, 없다고 일이 멈추지는 않으니까요.

이 구분이 중요한 건, 두 비유가 사람한테 요구하는 게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전기는 그냥 쓰면 됩니다. 콘센트에 뭐가 흐르는지 의심할 필요가 없죠. 인터넷은 다릅니다. 인터넷 쓰는 사람은 지금 보고 있는 게 사실인지 아닌지를 계속 판단해야 했으니까요.

AI가 처음 만든 문제는 아니죠

두 번째는 서평이 뽑아낸 경고입니다.

위험한 것은 AI가 틀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것을 틀렸다고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현월안, 『AI 이후의 미래』 서평

그 경고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게 AI가 새로 만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검색 결과 맨 위에 뜬 글이 fact인지 아닌지 가려내는 일, 인터넷 한창 깔리던 그때 몸에 붙였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십 년이 지나도록 그러지 못했죠.

다만 그때는 사정이 조금 나았습니다. 우리가 직접 소스까지 갔으니까요. 검색 결과를 훑고, 링크를 몇 개 열어 보고, 어디에 실린 글인지 눈에 들어오고, 댓글이 이상하면 그것도 보이고요. 딱히 의심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 과정에서 일부는 자연스럽게 걸러졌습니다. 경각심이 부족해도 절차가 얼마간 대신 걸러 준 셈이죠.

지금은 그 과정 자체가 통째로 없어졌습니다. AI가 알아서 추려서 정리해 주니까요. 우리가 받는 건 원본이 아니라 이미 한 번 정리된 2차 정리본입니다. 문제는 그 정리 과정에서 의심할 만한 것도 같이 정리되어 사라진다는 겁니다. 앞뒤가 안 맞는 대목, 출처가 수상한 대목, 원래대로라면 눈에 걸렸을 것들이 매끄럽게 다듬어진 채로 옵니다.

그래서 AI가 오니까 같은 문제를 처음 겪는 것처럼 당황하는 겁니다. AI는 그 문제를 새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얼떨결에 우리를 지켜 주던 절차를 걷어내고, 결과물은 훨씬 그럴듯하게 만들었을 뿐이죠.

전문성만으로 충분할까요

세 번째는 전문가의 자리입니다. 서평은 전문가 역할이 오히려 커진다고 말하죠. 그 말도 맞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면 좀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fact를 가려내는 책임을 전문성에만 맡기면, 전문성 없는 사람은 계속 남의 판단에 기대야 하죠. 그러면 인터넷이랑 AI가 원래 하겠다던 정보와 지식의 민주화는 실질적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말만 남는 셈입니다.

전문성이 없어도 끝까지 파고들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거를 하나씩 되짚고, 원문을 찾아서 확인하고, 앞뒤 안 맞는 데를 그냥 넘기지 않는 태도입니다. 집요함이고 몰입이고,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죠. 이게 전문성을 대체하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전문성 없는 사람이 fact에 도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말에도 구멍이 있습니다. 다 같이 집요해지자는 이야기는, 구조가 풀어야 할 문제를 개인 노력으로 떠넘기는 소리가 되기 쉽죠. 근거를 보여주고 확신도를 표시하는 건 분명히 도구 만드는 쪽 몫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무리 잘 되어 있어도, 마지막에 한 번 더 확인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 장치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서평 결론에 한 줄만 덧붙이고 싶습니다. 남는 게 판단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라는 데는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 전문가뿐이라면, 우리는 기반 시설을 하나 더 얻은 게 아니라 기댈 데를 하나 더 늘린 것에 가깝지 않을까요.

제가 교육 쪽을 공부했던 사람이라 아무래도 생각이 그쪽으로 기웁니다. 이건 결국 교육의 문제라고 봅니다.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을 더 가르치자는 이야기가 아니고요. 받은 것을 한 번 되짚어 보는 태도 자체를 기르는 교육 말입니다. 전공을 가리지 않고, 나이도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말이죠.

그리고 이건 새로 생긴 과제도 아닙니다. 인터넷이 한창 깔리던 그때 시작했어야 하는 일이죠. 이십 년쯤 늦었고, 아직 끝내지 못했습니다. 제목에 숙제라고 쓴 이유입니다.

확인해 둘 점

위에 인용한 문장은 서평 쓰신 분이 책을 읽고 정리한 표현이지, 제이슨 솅커가 쓴 원문 그대로는 아닙니다. 원저를 직접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서는 근거가 아니라 서평의 관점으로만 다뤘습니다.